2007 동유럽 Coach 투어

동유럽 다섯째날 2. - 어부의 요새 & 마챠시 교회 -

청주댁 2007. 7. 18. 21:24

내용이 길어 사진이 짤리니 우측 영문 주소를 다시 한번 클릭해 주세요. ^ ^

 

여행 일정 중 비를 못 본 날은 딱 삼일뿐이었습니다.

비엔나, 부다페스트, 프라하.....

 

무더운 날씨는 아니었으나 계단이 많아서 한 여름에 왔으면 큰일났었겠다 싶었습니다. 

 

 

혈기왕성한 윤군은 항상 앞서가고 사진 찍느라 바쁜 엄마는 항상 꼴찌입니다. 

 

 

 

 

헝가리를 건국한 마자르족을 상징하는 뾰족한 고깔 모양의  하얀색 탑 7개가 있는 어부의 요새입니다.

 

오른편의 동상은 헝가리 초대 기독교왕인 슈테판왕의 기마상입니다.

이 왕은 헝가리 역사상 가장 훌륭한 군주로 여겨지는 분으로,

약 천년 전 헝가리에 기독교를 들여와 교황청에서 왕위를 인정받았다고 합니다.

 

 

 

 

동상 아래의 부조입니다.

왕이 교황청으로부터 왕위를 인정받는 모습을 조각해 놓았습니다.

 

역대 헝가리왕들의 대관식을 거행했던 마챠시 교회인데요. 13세기 건축된 고딕 양식의 건물로 부다지구의 상징입니다.

마챠시라는 이름은 1470년 마챠시왕의 명령으로 88m의 뾰족탑이 증축되면서 붙여졌고 현재 터키인 오스만투르크

통치 시절에는 모스크로 사용되다가 17세기에 카톨릭 교회로 환원되면서 당시 유행하던 바로크 양식이 도입되었다 합니다.

 

어렵게 온 여행에 보수중이면 그것처럼 안타까운게 없는 것 같습니다.

 

 

어부의 요새에서 바라본 페스트 지역와 국회의사당입니다.

1988년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이 될 자격이 충분합니다.

 

 

 

회랑을 노천까페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페스트 지역과 다뉴브강을 전망으로 커피 한 잔 하시는 것도 좋은 추억이 되리라 봅니다.

 

어부의 요새를 지나서 있는 힐튼호텔 앞입니다.

 

 

 

 

언덕을 내려오며 멀리 보이는 어부의 요새를 다시 담아 보았습니다.

 

 

 

세체니 란츠히드를 건너 페스트 지역으로 이동합니다.

가이드 선생님께서 사자의 입안을 자세히 보라고 하시네요. 혀가 있는지 없는지....

일설에 의하면 완벽한 건축을 했다고 자부하는 다리 건축가가 자살을 했다고 하는데

그 이유가 사자 입안에 혀가 없다는 소문이 돌아서 자격지심에 그리했다고 합니다.

혀는 있었습니다.....

 

이 다리는 1820년 세체니 백작이 아버지 장례식에 가기 위해 다리를 건너야 했지만

8일동안 극심한 날씨로 다리를 못 건넜답니다.

그 이후 1849년 영국 건축가 클라크 애덤에게 의뢰해 다리를 설계, 건축했다고 하며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폭파된 것을 재건했다고 하네요.

세체니 란츠히드라는 이름은 난간이 쇠기둥으로 떠받치고 있는 듯한 모습에서 따왔으며

부다페스트 탄생의 견인차 역활을 한 세체니 다리가  놓이기 전에는 상류층 거주지 부다와

서민 거주지 페스트 지역사이에 거의 왕래가 없었으나 다리가 놓인 후 크게 달라져 1873년

부다페스트로 합병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이후 인구가 급격히 늘어나 30만명이던 인구가 지금은 200만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어부의 요새(Halaszbastya) (도움말 가이드 선생님과 KRT&하나투어) 

 

어부의 요새는 네오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뾰족한 고깔 모양의 일곱 개의 타워로 설계되어 있고 각 타워들은

수천년전에 나라를 세운 일곱 개의 마자르 족을 상징한다. 하얀색의 화려한 성벽과 마차시 교회까지 뻗어있는

계단은 관광객으로 하여금 그냥 지나칠 수 없게 만들 정도로 아름답다.

이 요새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옛날에 어시장이 있었던 곳이기 때문이라는 설이고, 다른 한 가지는 18세기에 어부들이 성벽에서

적군을 방어했다는 설이다.

이 곳에서는 다뉴브 강변의 아름다운 페스트 지구의 도시와 후방의 헝가리 평야가 넓게 펼쳐진다.

 

 
마챠시 사원(Matthias Templon)

 

13세기에 지어진 고딕식 건물로 역대 헝가리 왕들이 대관식을 올렸던 곳으로,.

마챠시라는 이름은 1470년 마치시 왕의 명령으로 교회 첨탑이 증축되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16세기에 부다가 터키에 점령당하면서 모스크로 변했다가 17세기에 다시 카톨릭 교회로

돌아왔고 18세기에 바로크 양식으로 재건축되었다고 합니다.

그 후에 슈레크의 개축으로 본래의 모습인 고딕양식을 기본으로 한 원래보다 8m 낮은

현재의 건물이 완성되었다고 하네요.

역사적인 이유로 내부는 이슬람적인 분위기가 풍기며
여러가지 원색 타일을 사용한 지붕과

내부장식은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며 ,여름철의 금요일 미사때는 리스트와 코달리의 음악이

연주 되기도 한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