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어머니들과 마찬가지로 울 엄마도 1달 가까이 해외여행을 떠나는 딸의 끼니꺼리가 걱정이신
지 고추장에 소고기를 볶아서 바리바리 싸주셨다. 하지만 자타가 공인하는 떡순이,빵순이인지라
양고기 스테이크를 제외하곤 어느 나라에서든 거부감 없이 모든 음식을 잘 먹었다.
그래서 첫 단체식사이자 무척 싫어하는 닭다리 먹을때 꺼내어 발라서 먹었던 것을 제외하곤 여행
내내 그대로 가지고 다니기만 했는데 알프스 정상 호텔 변기위에서 감자튀김에 버무려 먹게 될
줄이야 꿈엔들 상상이나 했겠는가?
루체른에 가는 도중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러 점심을 해결하게 됐고 햄버거 스테이크를 시켰는
데 햄버거 크기가 장난이 아니고 곁들여 나오는 프렌치 프라이의 양 또한 가히 상상을 초월하는
지라 버리기도 아깝고 해서 한국에서 가져온 비닐봉지에 잘 포장해서 가져 왔다.
밤에 출출할때 먹을 요량으로, 물론 주위에 외국인들이 많아서 마치 뷔페 처음 왔다 음식 바리바
리 싸가는 시골 아낙네 마냥 몰래 몰래 눈치보며 가져 왔다.
막상 호텔에 도착해 방에 짐 풀고 나니 허기가 지는데 감자튀김을 생각하게 됐고 그냥 먹자니
감자보다는 고구마를 좋아하는 식성인지라 평소에도 감자는 먹지 않는 스탈이라서 괜히 싸 왔다
생각하며 버릴려 하다가 문득 엄마가 싸주신 고추장이 떠오른 것이었다.
그런데 일본 친구들 4명 중에 룸메이트가 가장 성격이 까탈스러워 분명 냄새 난다고 호들갑 떨 것
이 뻔한 상황이라 (지금 생각하니 완전 공주과였다.) 밖에 나가서 전망대 가자고 하는 룸메이트에
게 정리할 것이 있다고 거짓말을 한 후 혼자 고추장에 버무려 먹을 계획이었다.
감자튀김과 고추장을 꺼내 침대에 앉았으나 곰곰히 생각해보니 객실에서 먹었다가는 환기를 시
키고 시간이 흘렀다 하더라도 외국인인 룸메이트에게는 분명 캐치될 고추장 냄새여서 고민하다
가 욕실로 가서 문을 걸어 잠그고 창문을 열고 변기 뚜껑을 내려 그 위에 앉은 후 감자튀김이
담긴 비닐봉지안에 볶은 고추장을 모두 부어 버무렸다.
허기도 지고 오랜만에 먹는 고추장이여선지 거의 입에도 안 대던 감자가 왜 그렇게 맛있고 창문
밖으로 보이는 알프스의 눈 또한 그리 포근할 수가 없었다.
눈에 묻힌 산,그리고 하늘,펑펑 쏟아지는 눈꽃을 바라보면서 나도 모르게 감상에 젖어 그동안의
여정을 돌아보며 이 생각 저 생각 분위기를 타다가 문득 내가 있던 환경을 인식하니 변기위에서
이런 감상에 빠지는 이가 과연 누가 있을까 싶어 나도 모르게 웃을 수 밖에 없었다.
내 집 욕실에서 감자튀김을 고추장에 버무려 변기뚜껑에서 먹는 모습을 상상해 보니 너무 우스
워 도저히 다시 재연하기는 힘들 것 같다. 여행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고 이런 추억
으로 힘든 현재를 잊고 내일을 기약하며 사는게 아닌가 싶다.
나의 스위스 여행중에 가장 기억나는게 감자 사건이라 함은 결국 기억나는 여행 여정이 없다는
이야기이다.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서 필라투스 정상에 있는 호텔에서 하룻밤 묶고 다음 날 루
체른 시내 구경을 하는 일정이었는데 다음 날 아침부터 폭설에 바람이 심하게 불어 도저히 케이
블카를 운행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호텔에서 하루 반을 꼬박 보내고 삼일째 되는 날은 다행히 날
씨가 허락해 하산하여 다음 행선지인 독일 라인강으로 향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친구들과 사진 찍고 눈사람 만들고 눈싸움하고 저녁에 모여 광란의 밤(?)을 보내며 스위
스에서의 여정을 마치게 되었다. - 맥주를 곁들였던 댄스파티이니 오해없으시길-
케이블카 타고 올라가며 찍은 풍경
케이블카
묵었던 호텔
여름의 호텔 풍경
필라투스 정상에서
( 그나마 첫날 정상에 가 봤으니 다행이지 다음날은 폭설때문에 통제된 상황이었다.)
바닥에 내린 눈을 모은게 언덕이 된다.
눈 치우느라 생긴 언덕에서 남아공화국 부잣집 형제중 동생과 함께
힘들여 만든 생애 최초의 눈사람 앞에서
( 둘째날 상황이다. 사진이 뿌연 것이 바로 내리는 폭설 때문 )
촌스럽다고 수근거렸을텐데 그래도 난생 처음 보는 벽난로라 호텔 식당에서 기념 촬영
호텔 별관 까페에서 낮에 못한 관광의 분풀이로 광란의 밤을..............
루체른의 명소인 유럽에서 가장 오래되고 긴 나무다리인 카펠교 엽서.
지붕의 들보 위에 17세기의 화가 하인리히 베그만이 그린 111장의 널판지 그림이 걸려 있는데
스위스 역사상 중요한 사건과 루체른 수호성인의 생애를 묘사했다고 한다.
오호! 통재라! 근처도 못 가보고 바로 독일로 떠났다.
참, 기억 날때 기록해 둬야지, 나중에는 완전히 잊을 것 같다.
호텔에서 전날 저녁 퐁듀를 먹었는데 내 입맛에는 별로였고 그 후 접해 보질 못해서 퐁듀에
대해 궁금한 것이 참 많다. 맛있게 잘하는 식당에 가서 꼭 먹어 봐야지.
식당 추천 부탁드려요!!!
'1997 서유럽 약국 탈출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풍차와 홍등가의 미묘한 조화 암스테르담....(1997.03.30~04.01) (0) | 2005.10.24 |
---|---|
로렐라이 언덕이 있는 라인강으로 - Rhein- (1997.03.29) (0) | 2005.10.22 |
유럽에서 4번째로 작은 나라 리히텐슈타인을 방문하다....(1997.03.27) (0) | 2005.10.21 |
산 좋고 물 좋은 인스브루크 Innsbruck 티롤....(1997.03.26) (0) | 2005.10.14 |
나치 수용소, 짤쯔캄마굿, 독일 뮌헨으로....(1997.03.24~25) (0) | 2005.10.12 |